The two enemies of human happiness are pain and boredom.

- Arthur Schopenhauer

 

가진 자는 지겨워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낙담하니 진정 행복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가끔 스스로를 돌아보면 쓴웃음 밖에 나질 않습니다. 가지길 원했던 것을 막상 손에 넣으면 금방 관심이 없어져 버리고, 곧내 가지길 원하는 것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워 해야 하니까요. 과연 행복은 제게 있어서 모래와 같은 것일까요? 언제쯤 제 손에 꼭 쥘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다 버렸을 때 그제서야 진정으로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사실인지 가끔은 '그것'을 손에 쥐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제 자신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전 이미 두손 가득 무언가를 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꼭 쥐고 있는 두 손을 펴지 않으면 더이상의 어떤 것도 손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에요.

 

"Plato and a Platypus Walk into a Bar" 책을 읽다가 쇼펜하우어와 싯다르타의 이야기가 나오길래 끄적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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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간만의 포스트군요. 1주일만인가요? 그동안 너무 극심하게 놀았더니 바쁘게 지냈더니 블로그에 글 쓸 거리도 없고 해서 블로그의 존재를 거의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oTL 새로운 글도 올라오지 않는 블로그의 방문자수가 매일 같이 일정한 것을 보면, 포탈 검색의 힘이 크긴 큰가 봅니다. 뭐 그래도 여전히 별 대단한 정보가 없는 블로그이긴 마찬가지이지만요. :P

어쨋거나 슬슬 제 근황을 궁금히 여기시는 분들을 위해 (있을까?)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상하게도 저는 항상 진득하게 한가지의 일이나 물건에 장시간동안 만족하고 있지 못하는 편입니다. 손에 쥐지 못한 행복이 있기에 더 행복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은 분이 공감하실까나요. 동경하는 대상이 수중에 들어오면 순수했던 동경이, 아주 짧은 시간동안 행복이 되었다가 결국은 지겨워지면서 무심해지더군요. 참 사람이란 무서운 존재인겁니다. (어이, 너만 그런거야)

손에 쥐면 곧내 지겨워집니다. 변화가 없어서 그런걸까요?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도 한 몫을 하지않나 싶어요. 참 큰일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애인이나 와이프 될 분한테도 이런 생각이 들면 안될텐데 말입니다.


짤방은 '누가 바나나를 노랗다/하얗다 하는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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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끌 시끌한 글들을 보자니 너무도 답답해서 이렇게 한 자 써봅니다. 꽤나 쓴 소리가 될지도 모르니 자신은 도덕적으로나 범사회적으로나 천연동굴의 수천년 묵은 수정처럼 투명하다 싶으신 분들은 양심에 털이 안났는지 한번 더 확인해 보시고 살포시 "뒤로가기" 클릭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경고하지만, 아래 본문은 "난 어떠한 악담도 감당할 수 있다" 고 믿으시는 분들만 읽으시길 바랍니다. 전 아랫 글을 읽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그 어떠한 정신적인 충격과 고통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물론 제 생각에 반대하시는 분들의 댓글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단순 비판이 아닐 경우에만 말이에요.


단도직입적으로 행복합니까?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며, 기준이 다양하다는 등의 변명은 전부 집어치웁시다. 예, 아니오 식의 단답식으로 답하라면 자신있게 난 행복하다 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이런 저런 변명으로 답변을 회피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억지로 강요하게 되면 결국 나오는 답변 중에 하나가 있죠. 바로 그나마 이유라고 들 수 있는 가장 흔한 기준인, 팔다리 성하고 건강하며 밥 세끼 굶지 않고 살고 있으니 행복합니다, 라는 답변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전세계 67억 인구중에서 지금 눈 한번 깜박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명, 수천명 그리고 수만명이 아사하고 육체적인 장애로 인한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음지 아닌 음지내에서 벌어지는 광경들을 생각해보면, 편안히 배 두들기며 지금 본문을 읽고 계실 모든 분들은 "행복" 한겁니다, 어떻게 보면 말이에요. 안그런가요?

하지만 한편으론, 이러한 이유로 행복한 사람중 태반 이상이 타인의 고통을 100%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진심으로 자신의 일인냥 공감할 수 없습니다. 별 문제 없이 태어나서 건강하게 지금껏 자라왔으니, 장애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직접 피부로 느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제발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려고 하지 맙시다. 자신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장애인에 관련된 경험이 있다고 한들 타인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겁니다. 괜히 종교와 도덕을 들먹일 필요도 없어요. 이상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어중간한 생각으로 괜히 상대를 괴롭히지 말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가장 상황에 적합한 결정을 내리면 되는 겁니다.

예, 저는 낙태 찬성론자입니다. 인간의 생명의 존엄함? 하하, 진정으로 인간을 "존엄"하게 여긴다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개개인이 하는 행동 부터 고쳐야 할겁니다. 아직 세상의 빛을 받지도 못한 태아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면서, 막상 이 아이가 태어난 후의 일은 왜 더 큰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겁니까? 단순히 복지시설의 증진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육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있는 겁니까?

태어날 때 멀쩡한 아이들도, 환경오염물질을 통한 각종 피부병과 점점 혼탁해지는 공기 덕분에 기관지 관련 질환에 시달리는 마당에,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겁니까?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겁니까? 살기를 억지로 강요하는 것과, 부모로서는 가슴 아프지만 최선의 방책이라 여기고 미연에 고통을 방지하는 것중 어느 쪽이 옳은 겁니까?

부모가 낙태를 결정했다면 그래서 과감히 태아를 포기했다면, 자신들의 선택으로 인한 죄책감으로 시달리더라도 잠시 고통받는 것은 부모가 되겠지만, 억지로 태아를 출산하게 되면 고통받는 이는 한사람 더 늘게 됩니다. 두 사람 고통 받는 거랑 세 사람 고통 받는 거랑 이왕 고통 받는 것, 거기서 거기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하고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아이를 아무 스스럼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건강하게 나아주지 못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식은 자식 나름대로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뿐일 겁니다. 과연 그 가정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련지는 감히 상상이 안갑니다만, 마냥 화목하지만은 않을 것 같군요.

멀쩡한 사람도 납치해서 불구로 만들어 버린다는 글도 심심찮게 많이 보았고, 자기 한 몸 제대로 간수하기 바쁜 세상인지라 참 각박한 광경도 많습니다. 불구가 된 몸으로 동냥을 다니는 사람들이나, 그들을 마치 바닥에 붙은 껌딱지 마냥 하찮은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들이나, 세상 참 생각만큼 "깔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낙태를 걱정하며 찬반론을 펼칠 것이 아니라, 낙태를 하게끔 만든 현실을 바꿀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멀쩡한 경우엔 왠만해선 장애 태아가 나오지 않아요. 우습게도 돈많은 재벌가에서 장애아가 나왔다는 소리는 못들어봤습니다. 이미 비밀리에 낙태를 한 것인지, 아니면 돈발로 부모가 튼튼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장애 태아로 고생받는 것은 대부분이 일반 서민이나 돈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짐을 지게 만들려는 겁니까?

환경 호르몬을 걱정해야만 하는 현실도 문제지만, 문제를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사회도 문제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낙태가 문제가 아니라, 낙태 자체를 조장하게 한 현실이 더 큰 문제입니다. 자신은 희생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맙시다. 서슴없이 매연을 뿜어내는 차를 운전하고 다니며, 여기 저기 쓰레기를 버리는 인간 이란 존재가 참 부끄럽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사람은 스스로 생산해내는 능력은 없으면서 언제나 소비만 합니다. 과장하자면, 내가 마시는 산소 한모금으로 인해 누군가가 한모금 덜 마시게 될련지도 모를 일이고, 자신이 내뿜은 이산화탄소와 각종 오염 물질은 다른 누군가에게 해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추-
행여라도 오해하시는 분 계실까 (과연 얼마나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실련지는 의문입니다만) 다시 밝힙니다만, 트랙백은 스팸 문제도 있고 해서, 본 블로그의 모든 글에 막아둔 상태입니다. 단순히 본 글만 막은 것이 아니니 오해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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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충족이 곧 행복일까?
사람은 과연 언제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일까?
그리고 진정한 행복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사람은 그 이상의 행복을 요구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일까?
죽고 나면 다 쓰잘데기 없는 짓거리들을 한순간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루를 사는 자,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그 누구 보다도 많은 행복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자신이 추구하던 행복을 손에 쥔 사람은 대개가 자신이 이룬 행복에 만족하지 못한다. 소위 말하는 더러운 욕망 탓인지, 한 자리에 머물기 싫어하는 자기개발욕심 때문인지 이유가 어떠하든 손에 넣은 행복은 더이상 행복이 아니게 마련이라. 끊임없이 새로운 행복을 찾아 떠나는 우리 모두가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떠돌이 방랑자가 아닐련지. 나도 이렇게 떠돌기만 하다, 죽는 그 날까지 잠시도 편히 눈 감지 못할 까 두렵다.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경우 행복을 이루기 위해선 시련과 역경이 요구되는 법. 행복을 추구하다가 되려 불행해지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추구하던 행복을 포기한 자는 되려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을 모르는 자가 진정으로 행복한 것인지, 행복을 모르는 자가 가장 불행한 것인지, 욕망속에서 갈등하는 나는 감히 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물론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다. 행복하지 아니하기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고 믿는다. 포기해야 할 때는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추구하던 행복만이 아닌, 새로운 행복을 찾는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행복의 기준을 물질에 두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사람의 생활이 크게 바뀔것 같은데, 난 이제 물질만능주의 사고방식을 버리기엔 너무나 늦어버린 것만 같아서 서글프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고, 손에 넣은 행복을 곧내 차버리고 또 다른 행복을 추구하는 내 자신이 이 시대의 인간 본성을 대변하는 것만 같아 두렵다.

갑자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을 되씹어 봤다. 이 말이 틀린 게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이, 성적이 높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고 성적이 낮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뭐 비단 성적 뿐만이 아니겠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항상 자신의 위에는 누군가 있지 않을까. 거기다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자신의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사람 수도 늘어만 가는 법이니, 가운데에서 이래 저래 치이는 사람은 슬플 수 밖에 없다.

제목은 겉으로만 멋있게 지어놓고 막상 본내용을 쓰고 나니 딱히 결론이 없는 글이 되었다. 항상 답보다는 수많은 질문을 낳는 행복, 한 개인에게 있어서 과연 행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되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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