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실감하기

회사가 크면 클 수록 일의 분화가 잘되어 있는 편입니다. 각 팀별로 맡은 역할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의 전문성이 높고 동시에 효율성도 자연스레 높아지게 마련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서로간의 깊은 유대감 없이는 감정의 골이 심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지 않는 이상 프로젝트의 진행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지요.

소프트웨어 개발 사이클에서 (제 생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SV&V 팀의 주된 목적은 제품의 퀄리티 보장입니다. 개발자들이 짜놓은 프로그램이 제대로 실행되는 지, 문제점은 없는 지 테스트 해보는 것이 일인 직업이에요. 물론 테스트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버그가 발견 되었을 시에는 확실히 보고하고, 버그픽스가 나오면 재확인하는 것 또한 SV&V 팀이 맡아서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탁구 경기를 보는 것과 같은 일상이 반복 되기 마련입니다. 버그가 생기면 제대로 된 절차를 통해서 개발자에게 넘겨지고, 버그가 고쳐지면 다시 테스터에게 넘어오게 되고 말이에요. 금방 금방 해결 되면 기분이 좋긴하지만, 계속 반복되면 짜증이 나게 마련입니다. 개발자와 테스터간의 사이가 좋은 경우에 농담으로 웃고 넘기게 마련입니다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앞으로든 뒤로든 서로 손가락질을 하게 됩니다. 개발자는 개발자 나름대로, 테스터들이 좀 더 일찍 버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에 불만이 생기고, 테스터는 테스터 나름대로 불완전한 소프트웨어에 불만을 가지게 되요.

RIM에서 근무하는 동안, (적어도 아직은) 불미스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맡은 일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밥을 먹는 한 식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D 초기에는 저도 항상 개발자로서의 테스팅만 해보았던 터라, 과연 SV&V팀으로서의 테스팅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 지 공감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덕분에 테스팅이라는 게 쉽지않다는 것을 항상 실감하고 있습니다. :)


궁극적으로는,

SV&V에게 주어진 역할은 수박 겉 핥기식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소프트웨어라는 것 자체가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눈대중으로 대충 실행되나 안되나 확인할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더군다나 실행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도 없고 꼼꼼히 많은 부분을 확인해 봐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End user 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시나리오도 가능하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설혹 멍청하거나 황당한 행동이라도 발생 가능한 이상 꼭 확인을 해봐야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마인드는 냉혹한 비지니스 세계에서 용납되지 않거든요.

최소한의 버그를 유지한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발표하기 위해선 최대한 조금이라도 일찍 버그를 발견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코드 자체만을 테스트 할 것이 아니라, 디자인 레벨부터 시작으로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에 (발생 가능한) 버그를 발견해내는 것이 중요해요. 많은 수의 버그가 잘못된 문서 표기에서 발생되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렇기에 개발자가 최종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코드를 작성하기 이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중요해요.


SV&V 내에서의 그리고 전체적인 회사내에서의 역할 분담

SV&V 팀 내에서도 역할 분담이 명확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자 개인의 장점을 잘 살려서 테스트 자동화쪽을 전문적으로 맡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뛰어난 언어 능력을 발휘해서 localisation 이나 internationalisation 쪽의 테스팅을 맡는 사람도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능력이 특출난 사람들은 테스팅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개별적인 프로그램을 따로 개발하는 경우도 있구요.

RIM의 경우엔 테스터로 일하다가 개발자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 개발자로 일하다가 테스터로 일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아예 마케팅과 같은 아주 다른 부서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구요. 결국 자신을 제한하는 것은 단 하나, 자기 자신 뿐입니다. 자기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혹시? 설마?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역할분담도 중요하지만, 모든 테스터들이 가져야 할 공통 마인드도 있습니다. 설마하는 부분은 꼭 짚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해요.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꼭 자문을 구해서 문서화 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후에 진짜 문제로 판명되든 아니든, 한번쯤은 이미 이슈화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특히나 최종 사용자는 어떤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 라는 생각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뜨거운 커피 컵에 "조심하세요, 본 음료는 뜨겁습니다' 라는 문구가 필시 기재되어야 하는 것 처럼, 사소한 일이라고, 당연하다고 생각된다고 해서 쉽게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되겠습니다.

우스개 말이지만, 테스터로서 일을 오래 하다보면 항상 제품이든 계획이든 테스터로서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만약 이런 일을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들은 답답해 보이지만 테스터로서는 필수라고 생각되네요. :)


점점 글을 쓰다 보니, 소재가 줄어들고 있네요. 길게 쓰려니 너무 장황하게 될거 같고 간략하게 쓰려니 너무 간단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힘을 내서 다음 4부는 SV&V의 입지에 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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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학생도 아니고 정사원도 아니야

정체성의 확립이란 게 사춘기때 이미 겪었고 다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했는 데, 막상 다시 겪게 되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P 작년 9월, 일을 시작하고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스스로를 학생이라 부르기도 애매하고 사원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더군요. 아직 졸업전이기도 하니, 계약직이라고 부르기엔 '과찬'일 것 같기도 했구요. 참 애매 했습니다. 코압이라고 회사내에서 우습게 보여지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정사원만큼의 권한을 지닌 것은 아니라서 살짝 눈치가 보이는 입장이고 하거든요. 덕분에 직장내 농담거리로 항상 등장하는 것이 코압이기도 합니다. :)

결국 제목을 사원이라고 붙이기는 했지만 정사원은 아니니 이건 사원이면서 사원이 아니기도 한 우스운 위치에 놓이게 되네요.


순진하기 그지 없다

학교가 배움의 장소라고는 하지만 모든 것을 배우지는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구요) 현장에서 뛰기 전까지는 책을 통한 배움을 실질적으로 적용해볼 기회가 없기에, 막상 뭔가를 하려면 많은 부분에서 서툴기만 합니다. 육체적인 노동을 요구하는 직종은 아니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실수는 거의 없습니다만, 알게 모르게 신경이 많이 쓰이네요.

실은 초기에는 "많이" 배우는 입장이기에 회사측에서도 아주 어려운 일이나 크게 중요한 일은 잘 맡기질 않습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라서 아예 회사 말아 먹을 실수만 아니면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구요. (회사 나름이지만) 덕분에 일 자체를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뭔가를 24/7 고민해가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려내야 했던 것도 아니고, 림 자체내의 규율도 느슨한 편이라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순진했기에 열정도 넘쳐났었고 덕분에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았습니다.

물론 이 순진함이 항상 이롭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특히 (일전에 몇번 포스팅 했던 것 처럼) 넘쳐나는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질풍 노도의 시기'도 있었구요. 회사가 클 수록 분화가 잘 되어 있기에 일들이 효율적으로 분화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혼자서만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랍니다. 학교에서 해왔던 것 처럼 혼자서 가볍게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일이 진행이 안될때 혼자서만 바둥바둥 거린다고 해서 안될 일이 갑자기 해결되는 경우가 없기에 편하게 마음을 먹는 인내심이 자주 필요하게 되더군요.


만사형통?

만사형통,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은 '편하게 일하는 방법'에 많이 익숙해져서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만, 초기에는 심히 불편했습니다.

제가 성격이 소심하면서도 동시에 곧잘 욱하는 편입니다. 물론 바깥으로 표출해내지는 않지만 많이 쌓이면 폭팔할 것 같은 화를 감당하지 못해서 혼자 자폭해버리기도 합니다. :D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 문제가 많이 해결되긴 했지만,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했었지요.

회사가 크면 클 수록 부서간의 대립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물론 나쁜 의미에서의 대립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과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기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대립이에요. 각 부서마다 맡은 일이 다른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다른 부서의 문제점을 떠 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이 '정치적인' 요소들 덕분에 초기에 맘고생을 좀 했습니다. 팀장이 팀원들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책임을 떠안기는 성격은 아니라서 그나마 나았지만 제 자신 스스로가 익숙해지지 않으면 고생길이 훤했었죠.


고진감래: 아픈만큼 성숙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초반에 신경을 썼던 것을 회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나올 정도로 많이 익숙해졌네요. 더군다나 처음에 열정적으로 돌아다녔던 덕분에 지금은 꽤나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세술에도 익숙해져서인지, 문제가 있을 때면 더이상 혼자 끙끙 앓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어요. :)

앞으로 졸업 후 본 회사로 돌아 올련지 아니면 새로운 회사를 찾게 될련지는 곧내 밝혀질 것 같습니다. 고생한만큼 정도 많이 쌓였는데, 돌아오면 좋겠지만, 막상 돌아와서 일을 시작하면 너무나 편해져서 안이해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몇부작으로 가게 될련지... 다음 3부는, 'SV&V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제가 일했던 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적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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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참 순진합니다. 제 아무리 x초딩이라고 부르고, 불량 청소년이라 일컬으며 비난과 야유를 쏟아부어도 순진한 건 순진한 겁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구요?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릅니다. 특히나 자립한다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의 학생들을 생각해 보면 말이에요.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학생은 일부 집단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신분으로 나눴을 때 '학생'이라는 포괄적인 무리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물론 대학생도 포함됩니다.

아직 학생이란 신분에서 100% 벗어나지 못한 제가 감히 몸을 담고 있는 무리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표명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현실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해보려 합니다.


미래를 설계하다

좀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회에 발을 내딛는 다는 것은 앞으로 자신이 걷게될 미래를 설계하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나 첫 발을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내딛었냐에 따라서 차후 5년이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순조로운 미래를 알리는 청신호를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죽도록 책만 파고 공부만 했던 학생들에게 가혹한 시련이 될지도 모릅니다만, 그렇기에 순진하다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아주 좁디 좁은 터널 속에서 저만치서 새어 나오는 빛만 바라보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무작정 기어나오기만 했는데, 바깥으로 나오기만 하면 만사가 다 해결 될 줄 알았지만, 막상 나오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근심 걱정 없을 줄 아는 순진한 학생이 이제는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현실을 알면서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인문계/이공계만으로 딱 잘라서 나누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교육실정을 따지기엔 너무나도 본 글이 길어지겠기에 깊게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만,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익숙해질 수 있도록 점차적으로 환경을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학생의 신분으로서 일을 시작하다

북미 (대학) 교육 방식중 마음에 드는 것중 하나가, 학생 신분으로서 회사에서 일정 기간동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 측에서는 싼 값에 사람을 쓰거나 때로는 새 인재 양성에 도움이 되기도 하기에 Co-op이라는 형식으로 학생을 데려다 쓰는 경우가 많아요. 캐나다 현지 학교 측 상황에 따라서는 미국에 건너가서 일을 하는 학생들도 꽤나 됩니다.

공부만 하다가 막상 일을 시작하려면 참 안되는 일이 많습니다. 열정만 가득해선 마음만 앞서는 경우도 많고, (기업)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에 익숙해지지 못해서 고생하는 경우도 많구요. 하지만 이 모든 고생들이 결국에는 다 쌓여서 소중한 경험의 일부분이 되는 겁니다. 아직은 학생의 신분이니 어느 정도의 실수도 눈감아주는 경우도 많아서 처세하기에 따라서는 인맥 쌓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전 작년 9월 부터 일을 시작해서 이제 곧 1년 기간이 끝나게 됩니다. 9월 복학을 시작으로 마지막 남은 대학 1년을 무사히 보낸다면 차후 졸업뒤에 이제껏 쌓아둔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취업에 꽤나 큰 도움이 되겠지요.


파란만장했던 그간의 이야기

일년, 어떻게 보면 '벌써' 라는 말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아직' 이라는 말이 나올 것 같기도 한 참 어중간한 기간입니다. 첫 출근 당시의 순진했던 제 모습을 회상해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하네요. 몇부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나눠서 그간 겪었던 이야기를 하나 둘 적어 보려 합니다. 아마 이 글이 본 블로그의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

2부는, '순진한 사원 일을 그르치다' 가 될 것 같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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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내내, 감히 올바르다 그르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를 평가할만한 처지가 못되기에, 감히 무엇 하나 추천한다는 말도 못하겠습니다. 단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험담으로서 사회로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이런 서문을 넌지시 던지는 이유는 책임 회피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세상 누구든, 자신의 인생은 자기 인생일 뿐입니다. 누구든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이고, 모든 희비는 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타인의 충고나 조언을 바탕으로 스스로 내린 결정이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왔다고해서 그 타인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아닙니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생은 자신의 결정에 의해 정해지고 만들어져가는 겁니다. 이 부분을 인지하시고, 제 글이 왕도가 아님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글 접어둡니다. 읽으실 분은 아래 '동의합니다. 글을 읽겠습니다.' 클릭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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